2008년 7월 23일 수요일

대한쥬신제국기[15]

7부 -비상(飛上)하는 쥬신


한기 9001년 2월 3일 (서기 1803년 2월 3일)


한경 태한궁


강민한 수상이 선흥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단박에 달려왔다.

"폐하께서 위독하시다고!"
"어제밤에 갑자기 쓰러지시더니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그럴리 없네, 그럴리 없어!"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수상각하..."


"허...그럼....그럼......"

"수상각하, 폐하께서 의식을 되찾으셨답니다!"
"그게 정말인가? 빨리 뵈어야겠네."
"여기로 오시죠."


태한궁내 내의원실

"왔나, 수상..."
"폐하, 저 여기있습니다."
"으...짐이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것 같으이..."
"그런 말씀 하지마십시오!"
"짐이 죽어 황제의 자리를 태자에게 물려주는 것만이 쥬신의 발전에 도움이 될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




"저녁수라에 일부러 복어내장을 섞어 넣으라고 시켰소..."





"예?! 어째서 그런짓을..."



"허허...마지막으로 태자의 얼굴을 못보는것이 한이되는군...
수상...태자와 쥬신제국을 부탁하네..."

"폐하, 폐하! 이렇게 돌아가시면 아니되옵니다! 폐하!"

"붕어(崩御)하셨습니다, 수상각하."

수상은 흐느끼며 선흥제의 어전을 하얀 천으로 덮어주었다.





태한궁 정문 광화문
(여기서 말하는 광화문은 새로이 신설된 태한궁의 정문으로서 경복궁의 광화문이 아님)


"폐하께서 승하하셨다!"


밖에서 모여 임금의 쾌유를 기원하던 백성들은 이 소리를 듣고 모두 흐느껴 하였다.
제국왕조기록 선흥제편에 기록된 바는 다음과 같다.

"폐하께서 승하하시고 광화문앞에서 소식을 전하니 인민들의 통곡소리가 천지에 달하더라."

실제로 한강너머 여의나루에서도 이 통곡소리가 들렸다는 기록이 있다.








후쥬신시 시청

이때의 후쥬신시장은 박성호로서, 후쥬신의 쥬신흡수반대파였다.

"시장님, 쥬신의 황제가 승하하였습니다."
"정말인가? 그럼 이제 쥬신으로부터의 독립도 수월해지겠군.
지금역사대로 가면 14살 먹은 태자가 순조가 될테고, 여기에 대해선 강민한도 무슨수를 쓰지 못하겠지.
이제 우리 후쥬신이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실 8995년 (서기 1797년)부터 20만의 후쥬신의 인구가 금갑하기 시작해
9000년 (서기 1802년)에 이르러서는 인구가 9만명밖에 남지않았다.
말이 좋아야 9만명이지, 순 평화국민은 모두 만주너머로 퍼져버리고, 일부는 중화민국국민이 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중화민국이 만주에대한 주권을 포기하고 쥬신에게 만주를 넘겨줌으로서,
쥬신으로의 흡수통합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후쥬신의 독립운동이 있은후 그해 3월, 후쥬신에서 정당이 탄생하였다.
당이름은 '쥬신독립전선'으로, 쥬신 본국의 '인민보수당'과 '진보당'과 어깨를 나란히 할정도로 세력이 거대해졌다.

독립전선은 진보당, 인민보수당과 함께 원내 제3당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쥬신본토에서는 행정구역 분할작업이 한창이었다.

우선 모든도가 주로 승격되었으며, 한경이 개경을 합병했다.
만주에는 요서주, 요동주와 평길주, 함길주, 연해주(사할린 포함)와 북쪽의 만주, 눈강(嫩江)주
그리고 후쥬신주로 분할되었다.

쥬신은 전쟁한번 치르지않고 고구려이래 가장거대한 영토를 가지게되었다.

그새 함길주 백두산에 위치하던 백두산정계비는 이때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고한다.


중화민국은 황하이남의 산동성까지 조차지로 넘겼다.
이문제에 관해서 중화민국정부내에서도 반발이 거세었다.
하지만 사대주의적이었던 정부수반 장위세 총리는 결국 산동을 쥬신에게 영구조차지로 넘겨버리고 만다.


이렇게 쥬신은 점점 세력이 강대해지고, 영국, 불란서와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세계속에 '쥬신'이란 이름을 강하게 새기게되었다.


쥬신본국에서는 14살의 어린태자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 선광제(조선=쥬신을 빚낸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기에 수상이 대신 국가의 모든 전권을 쥐게되고,
왕이 허수아비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강민한 정권 4기 초반이었다.
(이때부터 수상이 되고나면 그사람의 정권은 000정권 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년후,

한기 9004년 (서기 1806년)


아미리견(미국)에서는 원역사보다 빠르게 노예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쥬신과의 전쟁에서 지고난후, 광할한 캐나다와 미국 서북부지역을 쥬신이 가져가는걸 보고 나서
마음속으로 복수의 칼날을 다듬고 있었다.
그와중에 쥬신과 스페인령 멕시코간의 국경 분쟁이 있었고,
내리막길을 걷던 스페인은 멕시코를 원역보다 4년일찍 독립시키게된다.


9000년대 당시 쥬신정부가 '리턴 투 쥬신'의 후속계획에 따라 추진하던 비밀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첩자를 미국내에 심어 분열을 조장하고, 미국을 남북으로 분단해서
북미대륙을 쥬신, 남미와 북미, 그리고 멕시코의 충돌지역으로 만들어 미국의 성장을 저지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결국 서기 1815년(한기 9013년) 40여년이나 일찍 남북전쟁을 치르고
USA(United State of America)와 CSA(Confederate States of America)로 분단되고 말았다.


쥬신은 작전에 성공했지만 중요한걸 잊고있었다.
자신들도 언젠가는 분열된다는걸...



-비상(飛上)하는 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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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삽화있습니다.

미국분할도와 9003년 중화민국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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