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9일 토요일

4화 -첫번째 교전-

4화 -첫번째 교전-

 

2005년 4월 4일, 하남 황산

 

루시타니아가 하남을 공습하기 시작했을 때, 베를리니아는 루시타니아의 총사령관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타이타닉이 올 때가 됐군, 각오는 돼 있지?"

 

"물론이죠, 이제부터가 화끈한 복수의 시작입니다! 공격을 개시하라!"

 

"그건 안돼지, 이 멍청이들아!"

 

"???"

 

훈과 수연이 뒤에서 소려쳤다.

"우리가 있는 한은 절대로 그렇게 되진 못할거다, 베를리니아!"

 

"오, 이걸 어쩌나, 이제 나는 그냥 힘없는 조언자의 역할일 뿐인데, 그런 나를 상대로 뭘 어쩌겠다고?

 죄없는 약한사람잡아 족치자는 얘긴가?" 베를리니아가 조롱하는 말투로 얘기했다.

 

"우리의 상대는 당신이 아니란말야?"

 

"그래, 너희의 상대는 바로 여기있다."

순간 베를리니아의 뒷편으로 루시타니아의 신형 전폭기가 떠올랐다.

 

"소개하지, 우리 루시타니아 함대의 전폭기 LF-18K다."

 

"F/A-18? 호넷말이야? 호넷은 우리나라에 도입된 적이 없는데?!"
훈이 말도 안된다는듯이 전폭기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미래의 기술력으로 탄생시킨 첫번째 걸작품이다! 기능은 미국의 F/A-18보다 수 배는 뛰어나지!" 루시타니아의 총사령관이 소리쳤다. 이 작자는 얼굴 전체를 덮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뭘 그렇게 자신있게 말하냐? 그 가면부터 벗고 말하시지! 넌 대체 정체가 뭐냐?" 훈이 말했다.

 

"아직은 못가르쳐준다, 타이타닉의 총사령관. 그보다 빨리 우리의 전폭기를 막지 못하면 하남은 쑥대밭이 될텐데?"

 

"젠장할! 이 망할 자식아!"

 

-"잠깐만, 훈아!"
손목에 찬 통신기에서 인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네가 말했던 무기들의 시험이 모두 끝났어, 지금 그쪽으로 타이타닉의 전투기를 보낼게!"

 

"예?!"

 

-"아무짓도 하지말고 기다려!"

 

"???"
이 무슨 황당한 말씀.

전투기가 신장에서 황산까지 오려면 대기시간만 잡아놔도 족히 5분 이상은 걸릴 것이었다.

이건 뭐 앉아서 당하라는 얘긴지…?

 

"ㅎㅎ, 우리가 이긴거나 다름없군, 어이, 쟤들에게 한방 먹여주지 그래?"
베를리니아가 기분나쁘게 실실 쪼개면서 말했다.

 

"그래주죠. 그럼 한번 매운맛 좀 봐라, 타이타닉!"

 

LF-18K는 기수를 앞으로 치켜들더니 곧장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수직상승. 시 해리어도 아니고 F/A-18도 아닌 이 괴상한건 대체 뭐야?

 

"가라!!!"

 

[투타타타타]

기관포가 총알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으악! 이 나쁜 자식! 우리는 무기도 없다고!

무기 없는 민간인을 공격하면 WFCN에서 영구제명아니야?"
WFCN에서의 영구제명. 그것은 곧 함대의 해체를 의미했다.

 

"그딴건 상관없어! 그러면 진작에 팩스 아메리카나 함대나 브리타니아, 데이코쿠 함대는 왜 멀쩡한데?"

 

"!!!"

돈과 권력이면 맘대로 함대도 만들고 해체할 수도 있다.
초강함대연합'SPFU(Superpower Fleet Union)'의 함대들은 모두 국가의 지원을 받는 '정치유착형 함대'이다.

인도네시아나 이란같은 곳 에서는 함대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상상을 초월하여, 사실상 국가의 예산 ⅓가량이 함대 유지에 투입되고 있었다. 하지만 생산성이 -라서 그 나라들에서도 돈지랄이라며 함대를 해체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그 함대들은 권력이 있잖아! 왜 우리같은 작은 규모의 함대는 찍소리 하지말고 가만히 있어야되는건데?? 너희는 청랑의 지원을 받기라도 하지 우리는 순 우리 힘으로 일궈낸 함대야!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너희를 쓰러뜨려야겠다!"

 

"이 이기주의자!!! 너 혼자만 살겠다면 다야!!!"
가만히 있던 수연이 소리쳤다.

 

"그래, 난 나와 우리 함대만 살리면 돼. 이게 나의 뜻이다. 됐냐?"

 

"……"

 

"그럼 저세상으로 가라. CBU-66 발사!"
루시타니아 총사령관과 베를리니아는 순식간에 하늘높이 사라졌다.

 

"CBU? 혹시 그 CBU(Cluster Bomb Unit;집속탄)?! 말도 안돼! 저들은 여기를 날려버리려고 작정했어!!!"

훈이 소리쳤다. 훈은 순간 CBU도 핵폭탄처럼 국제적으로 사용을 금지시켜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지금 왜 그걸 생각하는거지?!

 

"뭐?!" 아무것도 모르는 수연이 말했다.

 

"지금 필요한건 스피드야! 뛰어!"

 

이 순간 저 멀리 하늘에서 뭔가가 날라오더니 떨어지는 집속탄과 명중했다.

[-쿠웅]하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고, 집속탄은 폭발하지않고 그대로 추락했다.

 

-"이봐, 훈아! 어때, 끝내주지!"
통신기에서 인자성이 소리쳤다.

 

"네?!"

 

-"네가 말해 놓고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면 어떡해?!"

 

"이게, 설마 그 내가 말한 PL-CBU 맞아요?"

 

-"그래, 인마."

 

PL-CBU(Powerless-CBU), 이른바 집속탄 무력화탄은 모(母)폭탄을 폭파시키는 시한장치에 충격을 가해 폭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신무기이다.아직 그 어느나라에서도 만든적이 없는 이 도구는 앞으로 번창할 타이타닉의 강대한 기술력의 첫 작품이 된다.

 

"베를리니아랑 그 가면쓴 녀석은!"
훈이 잠깐 잊은 것 같아서 수연이 말했다.

 

"도망쳤나보지."

 

그 때, 루시타니아의 총사령관과 베를리니아는 운터베르크에서 이 사실을 알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제일 분노한 사람은 베를리니아였다.

 

"우리는 뛰고 있을때 그들은 날고 있었어! 젠장. 우리가 뭘 만들어내면 저쪽에서는 더 뛰어나고 우수한 무기들과 기술들을 만들어내니… 누군가 먼저 앞서가기 시작하면 뒤에 뛰는 사람은 따라 잡을 수 없게 되고 말아…"

 

"그러면 우리는 더 앞으로 나아가면 되죠."

 

"넌 왜 아킬레우스가 거북을 따라잡지 못하는지 모르니?"

 

"그건 현실적으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우리의 힘이면 충분히 저들을 따라잡을 수 있어요. 두고보라죠."

 

"애도 참…넌 너무 똑똑해서 탈이라니까, 루시타니쿠스."

루시타니아 함대의 총사령관, 루시타니쿠스(Lusitanicus). 장차 타이타닉의 미래의 커다란 방해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베를리니아의 눈에 비치던 이 사람의 모습은 아직 앳된 중학생같았다.

 

 * * *

 

4월 4일, 루시타니아의 위협이 타이타닉의 기술사용으로 저지되고, 루시타니아가 다시금 기회를 노리고 있을 무렵, 한-중 국경지대에서는 크고 작은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군사뿐만 아니라 민간분야에서도.

 

[2005년 4월 15일, 대한민국 함경북도 경원군]

 

옛 발해의 동경용원부(팔련성)가 코 앞인 이 곳에선 어이없는 이유로 시작된 연변일대의 조선족들과 한국인들간의 싸움이 크게 번지고 있었다.

 

"간도는 조선이 지배하던 역사적으로 보나 민족적으로 보나 엄연히 우리땅이야!" - 한국인의 주장

 

"웃기는 소리 하지 말지? 그렇게 따지면 한국의 함경북도, 그 논리로 나가면 여기는 예전에 여진족의 땅이었으니까 만주족에게 돌려주지 그래?!" - 조선족의 주장

 

조선족은 이 시기에 이미 "한국말 할 줄 아는 피만 한국인인 중국인"이 되어있었으므로 이에 대한 논쟁은 논외로한다.

따지고 보면은 조선 숙종대,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시절에 강의 위치를 잘못 알고 국경을 잘못정한 댓가를 미래의 후손들이 치루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의 국경 인식은 "압록강-두만강(현 두만강. 토문강이 아니라, 이 환빠들아!!!)"였다는 것이다. 조선왕조 실록 숙종 38년의 기록에는 이렇게 써져있다.


[문헌 인용]
『신(臣)이 북관(北關)에 있을 때 백두산의 푯말 세우는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대저 백두산의 동쪽 진장산(眞長山)안에서 나와 합쳐져 두만강(豆滿江)이 되는 물이 무릇 4갈래인데, 그 중에 가장 남쪽의 네번째 갈래는 곧 북병사(北兵使) 장한상(張漢相)이 가장 먼저 가서 살펴보려 하였다가 빙설(氷雪)에 막혀 전진(前進)하지 못한 곳입니다. 그 북쪽의 세번째 갈래는 곧 북우후(北虞候) 김사정(金嗣鼎) 등이 추후(追後)로 간심(看審)한 곳이고, 그 북쪽의 두번째 갈래는 곧 나난 만호(羅暖萬戶) 박도상(朴道常)이 청차(淸差)가 나왔을 때 도로(道路)에 관한 차원으로서 따라갔다가 찾아낸 것입니다. 그 가장 북쪽의 첫번째 갈래는 수원(水源)이 조금 짧고 두 번째 갈래와 거리가 가장 가깝기 때문에 하류(下流)에서 두번째 갈래로 흘러 들어 두만강의 최초의 원류(源流)가 된 것이고, 청차가 가리키며 ‘강의 원류가 땅속으로 들어가 속으로 흐르다가 도로 솟아나는 물이라.’고 한 것은 첫번째 갈래의 북쪽 10여 리 밖 사봉(沙峰)밑에 있는 것입니다. 당초 청차가 백두산에서 내려와 수원(水源)을 두루 찾을 때 이 지역에 당도하자 말을 멈추고 말하기를, ‘이것이 곧 토문강(土門江)의 근원이라.’고 하고, 다시 그 하류를 찾아보지 않고 육지(陸地)로 해서 길을 갔습니다. 두 번째 갈래에 당도하자, 첫번째 갈래가 흘러와 합쳐지는 것을 보고 ‘그 물이 과연 여기서 합쳐지니, 그것이 토문강의 근원임이 명백하고 확실하여 의심할 것이 없다. 이것으로 경계(境界)를 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이 여러 수원의 갈래로 경계를 정하게 된 곡절의 대략입니다.

신(臣)이 여러 차사원(差使員)들을 데리고 청차가 이른바 강의 수원이 도로 들어가는 곳이란 곳에 도착하자, 감역(監役)과 차원(差員) 모두가 하는 말이 ‘이 물이 비록 총관(摠管)이 정한 바 강의 수원이지만, 그때는 일이 급박하여 미처 그 하류(下流)를 두루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푯말을 세우게 되었으니 한 번 가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허(許)와 박(朴)【거산 찰방(居山察訪) 허양(許樑)과 나난 만호(羅暖萬戶) 박도상(朴道常)이다.】 두 차원을 시켜 함께 가서 살펴보게 했더니, 돌아와서 고하기를, ‘흐름을 따라 거의 30리를 가니 이 물의 하류는 또 북쪽에서 내려오는 딴 물과 합쳐 점점 동북(東北)을 향해 갔고, 두만강에는 속하지 않았습니다. 기필코 끝까지 찾아보려고 한다면 사세로 보아 장차 오랑캐들 지역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며, 만약 혹시라도 피인(彼人)들을 만난다면 일이 불편하게 되겠기에 앞질러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청차(淸差)는 단지 물이 나오는 곳 및 첫 번째 갈래와 두 번째 갈래가 합쳐져 흐르는 곳만 보았을 뿐이고, 일찍이 물을 따라 내려가 끝까지 흘러가는 곳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본 물은 딴 곳을 향해 흘러가고 중간에 따로 이른바 첫 번째 갈래가 있어 두 번째 갈래로 흘러와 합해지는 것을 알지 못하여, 그가 본 것이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인 줄 잘못 알았던 것이니, 이는 진실로 경솔한 소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미 강의 수원이 과연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청차가 정한 것임을 핑계로 이 물에다 막바로 푯말을 세운다면, 하류(下流)는 이미 저들의 땅으로 들어가 향해간 곳을 알지 못하는데다가 국경의 한계는 다시 의거할 데가 없을 것이니, 뒷날 난처한 염려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臣)이 여러 차원들과 함께 상의하기를, ‘이미 잘못 잡은 강의 수원을 비록 마음대로 우리가 변경할 수는 없지만, 하류가 어떠한지는 논할 것 없이 물의 흐름이 끊어진 곳 이상은 진실로 마땅히 푯말을 세우는 안이 되어야 하니, 먼저 비(碑)를 세운 곳에서부터 역사를 시작하여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되, 나무가 없고 돌만 있으면 돌로 쌓아 돈대를 만들고 나무만 있고 돌이 없으면 나무를 베어 목책(木柵)을 세우기로 한다. 오늘날 조정의 명령이 당초부터 한 차례 거행으로 역사를 마치려는 뜻이 아니었으니, 빨리 마치려고 하지 말고 오직 견고하게 하기를 힘쓰되 이른바 물이 나오는 곳에까지 이르지 아니하여 우선 역사를 정지하고 돌아간다. 강의 수원을 변통하는 것에 있어서는 서서히 조가(朝家)의 의논이 결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내년 역사를 계속할 때 진퇴(進退)하는 바탕으로 삼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더니, 차원들이 모두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이 뒤에 들으니, 허양(許樑) 등이 미봉(彌縫)하는 데만 급급하여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목책을 두 번째 갈래의 수원에다 대놓았다고 하였습니다. 대저 목책이 끝나는 곳은 바로 국경의 한계가 나누어지는 곳입니다. 두 나라의 경계를 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그런데 한 두 차원의 뜻만으로 조정에서 알지도 못하는 물에다 강역(疆域)을 제멋대로 정했으니, 이는 마땅히 징치(懲治)하여 강토에 관한 일을 중히 여김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강의 수원에 관한 한 가지 일은 또한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보다 좋은 대로 잘 처리하게 하소서.』 [문헌 인용 終]


-‘흐름을 따라 거의 30리를 가니 이 물의 하류는 또 북쪽에서 내려오는 딴 물과 합쳐 점점 동북(東北)을 향해 갔고, 두만강에는 속하지 않았습니다. 기필코 끝까지 찾아보려고 한다면 사세로 보아 장차 오랑캐들 지역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며, 만약 혹시라도 피인(彼人)들을 만난다면 일이 불편하게 되겠기에 앞질러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두만강에는 속하지 않는다…"

 

이들은 토문강의 지류가 동북 방면으로 흘러가는 송화강의 상류임을 분명히 알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일제의 농간으로 송화강의 동쪽까지 이른바 북간도가 한국의 영토로 인식되게 되어버렸다. 이 곳은 청과 조선의 영향력이 미미하게 미치던 지역이었다.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지는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발단은 조선족 청년이 벽돌을 한국인 노인의 머리에 내려쳤을 때였다. 노인은 그자리에서 즉사했고, 조선족 청년은 4월의 날씨에 두만강 물속에서 동사해 죽고 말았다. 이로 인해 한족ㆍ조선족과 한국인 간의 충돌이 심화되는 양상을 띄었다. (죽은 조선족 청년이 실은 조선족이 아니라 한족이었다는 설까지 있다.)

 

간도가 아무의 소유도 아닌 지역이었고, 조상들이 국경을 잘못 정했었던 것조차 몰랐었던 당시 환빠였던 훈은 이 국가ㆍ영토분쟁에 개입해 한국의 편에서서 이익을 봐야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지금으로 보면은 상당히 위험한 상상이었다. 이 당시 국제법상에 명시되어있던 "함대간의 질서 유지 조항"(일명 함대법) 11조-'국가적 분쟁에 개입할시에는 WFCN에서 영구 제명하며, 차후에 다시 함대를 세우더라도 어떤 국가ㆍ함대와의 연대가 금지된다.'-라는 항목이 있긴 하지만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항일뿐,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초강함대연합에서의 수시로 벌어지는 함대법 위반 행위가 국제사법재판소에서는 매번 묵살되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브리타니아 함대의 1980년대 영국의 끊임 없는 노조파업에 대한 개입에서 시작해 팩스 아메리카나 함대의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 전쟁 미군에 대한 지원, 프랑스 그랑드 함대의 이주자 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이 그것이었다. 법은 돈과 권력 앞에서 있으나 마나한 것이었다.) 훈은 머리가 잘돌아 가지 않아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못했다. 훈은 적어도 북방주둔 통일한국군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19일 긴급 함대회의(라봤자 인자성, 수연과 자기뿐)에서 한국군에 대한 지원을 하자고 제의했다. 이는 만장일치로 회의를 통과한다. 이후 총사령관의 "지원계획 7389"에 대한 허가가 있고 나서, 청랑의 무기 생산라인과 타이타닉의 무기 장비 체계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인자성은 재계의 중요한 인물로서 '함대와의 연합군 구성'을 위해 정부 고위급 각료들과의 물밑접촉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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