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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30일 일요일

환빠 양성 방송 KBS를 경외하라!!!

 

에헤라디여

환빠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겠구먼

우리는 모두 흉노의 후예로구나~!

 

디시 역갤은 환호의 도가니

★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경축 흉노신라★

2008년 11월 16일 일요일

이번에 6화에 실릴 호소문입니다.

-작가의 환단고기에 대한 생각-

환단고기 애기하려니까 손이 안움직이네요. 잠깐 얘기는 하고 지나가야 겠습니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쥬신이니 환국이니 치우천왕이니 모두 사기꾼 이유립과 그 일당들이 창조해낸 역사소설입니다.(동시대 최고로 어려운 소설인듯) 환단고기가 부각된 이유는 일제강점기 시절 과거에 친일행적을 저지른 사람들이 광복후 자신의 친일행각을 감추기 위해 저지른 일 때문입니다.
예로, 재야사학자로 불렸던 문정창의 예를 들어봅시다. 이 사람은 1923년에 조선총독부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친일파입니다. (이미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올라와 있음) 이 사람 이외에 과거의 재야사학자들 중에서 친일하던 사람들이 꽤 됩니다. 현재의 재야사학자들은 모두 이들의 말과 논리에 현혹되어 넘어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환단고기의 원류는 친일파들이며 그 논리는 일본의 제국주의 시절의 대동아공영권에서 따왔으며 이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은 한국인의 열등감과 자괴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독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환단고기같은 위서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이미 빠진사람은 구할 수 없지만 빠지려는 사람은 구할 수 있습니다.

 

모두들 정신 차리고 역사를 바로봅시다.

 

환국은 이유립에 의해 창조된, 이 지구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국가이며 배달국도 마찬가지이고 단군조선은 재조명 해야할 대상입니다.
인류의 기원지는 아프리카이며(현재 정설) 바이칼 호(천해가 아닙니다)는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매식자(쿠투넷에서 사용하는 용어, 매국노 식민사학에 물든 자식)라고요?

 

뭐, 빠진사람은 구할 수 없으니까 그들에게서 만큼은 욕을 실컷얻어먹어도 좋습니다.

 

저도 한때는 환빠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그 때 '대한쥬신제국기'를 연재 했었는데 환빠에서 벗어난 지금은 작품의 완전 수정 아니면 완전삭제라는 방법을 써서라도 어떻게든 환빠였던 흔적만이라도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쪽팔립니다. 환빠들의 짜맟추기 논리에 걸려 들어 고생한 지난 1년동안의 시간이 아깝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서 제 의견을 말합니다.

 

1. 정부에 환단고기의 완전페기처분과 소각을 요구합니다.

 

2. 국정원에 우리역사의 비밀(무슨비밀이 있다고 비밀이냐 비밀은…순 음모론 사이트http://www.coo2.net)과 한민족참역사 등 역사왜곡사이트들을 폐쇄하고 아니면 링크를 http://orumi.egloos.com/3390711로 돌리는 방안을 요구합니다.

 

3. 간도지방영유권을 영구히 포기합니다. 그리고 통일에 국력을 매진토록 합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국경협상을 다시벌여 녹둔도만큼은 되찾을 수 있도록 합니다.

 

4.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다시 만들어 친일파 후손들의 사회적 매장을 추진할 것을 요구합니다.

-박창범 교수의 재산을 몰수하고 교수자격을 박탈합니다.

 

환빠짓은 나라의 이미지에 막대한 손상을 끼치고 주변국들에게 전쟁 준비 현상을 유발하오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모두들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환빠(환단고기 빠돌이)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인디언 원주민언어“ 우리말일치...
단어와 구 문장까지 발견주장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과 인디오는 우리와 한 핏줄인 한민족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제기돼 주목되고 있다. 이 같은 학설의 근거로 아스텍인들이 사용한 고어 ‘나와들어’가 우리말의 고어와 어순과 문장의 구조적, 형태론적인 면이 정확히 일치하며, 발음까지 같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배재대 스페인·중남미학과 손성태 교수는 한국-시베리아센터가 9일 오후 4시 대학 21세기관 소회의실에서 ‘시베리아 고아시아 인종 후예, 한민족의 파장(아메리카 대륙까지)’라는 주제로 열리는 세미나에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손교수는 ‘민족의 이동 : 아메리카로 건너간 우리 민족의 언어적 증거’라는 논문을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의 언어에서 오늘날 한반도에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와 구, 심지어는 문장까지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689년미국 LA에서 발간된 아스텍인들의 ‘나와들어’에 대한 연구문헌인 ‘Arte de la lengua mexicana'를 보면, 15c 혹은 그 이전 우리말 고어의 특징에 대해 말한다고 할 정도로 정확하게 우리말과 일치하는 많은 설명이 쏟아져 나오고, 그 내용도 매우 체계적으로 우리말 고어를 설명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순경음 비읍(ᄫ), 15c까지 우리말에 존재했던 세 가지 억양, 현재까지도 쓰이는 우리말 복수형 어미 (~들, ~떼), 우리 고어로 땅을 의미하는 ‘달’등이 나와들어에서 그대로 사용되었다. 단어뿐만이 아니라 ‘내 지이 /ne chii/ =내 집’, ‘내 곳 /ne kotz'i'j/ = 내 꽃(이)' /my flower/' 등과 같이, 단어 및 구가 같다.

또 “나 나아 트홋타(발음) /nɨ’ naa tɨhota.(나와들어) /나 나를 다쳤다(우리말)/ I REFL hurt / I hurt myself (영어해석); 야히있다(발음)/ ɳahɨ-’ta (나와들어)/ 약이 있다(우리말)/ have medicine (영어 해석)”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장도 같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 후렴구인 ‘아리 아리랑 아리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의 뜻이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 지지 않고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 우리말이 한자어로 대체되면서 순수 우리말이 대부분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나와들어에서 아리랑의 가사에 사용된 말을 미국학자가 해석한 바에 따르면, 『‘alarigá’ 아라리가=thus/그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로, 『‘ari’ 아리=now/지금』로 풀이 됐으며, ‘났네’는 ‘이겼다’를 의미하는데, 명절날 윷놀이와 같은 전통 놀이에서 이겼을 때 ‘났다’하고 환호하는 것을 볼 때, 아리랑 가사의 뜻은 ‘지금 아리랑 지금 아리랑 그렇게 해서 이겼네’라고 해석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밝혀진 가사의 의미로 판단해 볼 때,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고대 우리 민족이 어떤 축제나, 이웃 부족과의 친선 경기 또는 전쟁에서 이겼을 때 불렀던 '승리가, 승전가'임에 틀림없다고 손교수는 주장했다.

이 와 함께 손교수는 멕시코 역사서에서 ‘아스텍인들은 ‘사막 근처인 아스달란’에서 왔으며, 두 개의 나라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우리 선조들인 부여와 고조선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왜냐하면 고조선의 첫 도읍인 ‘아스달’과 일치하는 것은 물론, 고조선의 위치가 중국 요하강 서북쪽 즉 고비사막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다는 중국 문헌의 기록과도 일치하며, 우리 선조들이 흰색을 좋아하여 흰옷을 즐겨 입었는데, 아스텍제국의 모든 사원들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는 기록도 있고, 순장이라는 문화도 같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아스텍인들과 우리 한민족은 언어적으로, 역사적 기록에서도, 풍습도 일치하는 면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알려진 몇 만 년전의 고아시아인만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다는 기존 학설로는 설명될 수 없다”며 “우리 민족이 직접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음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임에 틀림없으며, 그 시기는 기원 전후 또는 초기 삼국시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신라시대의 유물 중에 많은 동물 형상들의 토우가 있는데, 그 동물 중에 중남미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개미핥기’도 있다. 우리 학계에서는 이것을 아직까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데, 손교수는 이것이 우리 선조들이 베링해협을 건너서 멕시코까지 왕래했던 또 하나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사와 세계 문화사는 다시 써야하며, 과거 화려했던 아스텍제국의 문명은 곧 위대한 우리 문명이라는 것이다.

 

 

-예술을 즐겨라! ⓒ 아츠뉴스 김승기기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전일보
<H4 class=tit_article>손성태 배재대 교수 ˝아메리카 인디언도 단군의 자손˝ </H4>
기사입력 2008-06-09 22:42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인디오가 우리 민족과 같은 핏줄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손성태 배재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사진>는 9일 배재대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간 우리 민족의 언어적 증거‘라는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손 교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고어인 ‘나와들어(語)’와 우리말의 ‘고어(古語)’ 사이에 어순과 발음, 문장의 구조적, 형태론적인 면 등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실례로 우리 고어의 순경음인 ‘비음이응(ㅸ)‘이나 복수형 어미인 ‘~들, ~께’, 땅을 의미하는 ‘달’ 등의 단어와 15세기까지의 억양 등이 나와들어에 그대로 쓰이고 있으며 ‘내 지이(내 집)’, ‘내 곳(내 꽃)’ 등 구(句)도 역시 유사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지금까지 정확한 뜻이 밝혀지지 않은 아리랑의 후렴구 ‘아리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의 뜻을 나와들어로 풀어본 결과, ‘지금 그렇게 해서 이겼네’로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아울러 멕시코 아스텍인의 역사서에 조상들이 ‘사막 근처인 아스달란과 두 개의 나라에서 왔다’라는 기록도 우리 선조들인 부여와 고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아스텍인들과 언어, 역사, 풍습이 일치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직접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라며 “우리 민족의 이동 시기는 기원 전·후 또는 초기 삼국시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김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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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란 = 아사달??? 풉,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이런 행위를 환빠의 ㅈㄹ이라고 한답니다.
제가 밑줄친건 환빠들이 주로 잘하는 "말뜻 지맘대로 해석하기"의 예입니다.

2008년 11월 14일 금요일

모두들 환빠를 만났을때 이 링크를 추천해 줍시다.

http://orumi.egloos.com/3390711

초록불님이 내용을 통째로 퍼가는걸 싫어하십니다.

다소 문제가 있다 싶으면 내용을 퍼간 사람들에게 일일이 수정하라고 답할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래서 링크만큼은 퍼가는걸 허락하셨습니다.

혹시 주위헤 환국, 쥬신이나 대륙삼국설, 대륙조선설에 빠져 허우적 대는 사람이 있으면 이 링크를 소개해주고 1000원 주면서 집 앞 슈퍼에서 빵한개 사먹으면서 보라고 하세요.

그나저나 환빠들의 논리가 얼마나 허술하길래 네티즌 한명에게 완전히 쳐발리는 겁니까?

얼른 환빠짓 접길 잘했습니다.

 

환빠 박멸을 위해 앞으로!

2008년 8월 19일 화요일

대한쥬신제국기[17]

8부 약진(躍進)하는 쥬신 - 제1차 조일분쟁 [朝日紛爭, First Jyusinian-Japanese Dispute]

시간은 흐르고 흘러
9092년 7월경 (서기 1894년)


한경특별구역 외교관구 주일공사관

쥬신수도방위군에 포위당한 주일공사 하라모토 카스이에 (源本春家)는
쥬신이 언제 자신을 죽일지 몰라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공사님! 본국에서 전갈입니다!"

공사관 직원이 헐레벌떡거리며 달려왔다.

"뭔가? 설마 그..."
"예! 그 설마입니다. 나가사키에서 대규모 함대가 소주로 출격했다고 합니다!"
"맙소사, 놈들눈에는 내가 안보이나! 난 지금 저 쥬신인들한테 총에 맞아 죽을 처지라고!
쥬신은 위험하다고 괜한 도발 하지말랬더니 공사로 내쫓고,

나보고 앉아서 죽으라는거야! 이 나쁜 정부자식들!"

"공사님! 수상기(TV)에서 속보가 나오고 있습니다!"
"[JBN 긴급 속보입니다. 일본군이 항주만의 쥬신군을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 지금 일본 정부에서 긴급 발표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현장에 나가있는 이성구 특파원 나와주십시오!
'예, 지금 여기는 도쿄 가스미가세키 정부종합청사입니다.

현재 일본 수상이 대쥬신담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 시작되었군요.]

-안녕하십니까, 일본국 수상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입니다. 우선 현재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3일전, 쥬신제국육군 1200여명이 항주에 상륙하려는것을

중화민국 정부의 요청으로 우리 일본군이 저지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선제공격은 쥬신측에서 먼저 했으며, 일본군은 대응공격으로 모두를 사살하였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정당방위였으며, 교전 과정중 우리 일본측도 수십명의 군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쥬신은 주권국가에 자신들의 군을 상륙시키려 하였으며, 이는 엄연한 불법입니다.
우리 일본은! 굴하지 않고 쥬신의 동아시아 정복을 저지하겠습니다.-"

야마모토 공사는 말도안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천하의 거짓말쟁이는 다르군...'

"이봐, 지금 JBN이랑 대한일보, 쥬신신문을 포함한 모든 언론사의 기자들을 불러주게.

나도 입장발표를 해야겠어."
"하, 하지만 공사님! 그런짓을 하셨다간 본국으로 강제압송 당할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여기서 죽으나 저기서 죽으나 죽는건 마찬가지야."

"[JBN 긴급 속보입니다. 일본공사가 현재 입장발표를 준비중이라고합니다.

현장에 정정민기자, 나와주세요!"
'예, 저는 지금 일본공사관앞입니다. 지금 일본공사가 입장발표를 준비하고있는데요,

어?! 저쪽에서 뭔가 다가옵니다?
육군장갑차군요. 아, 저건... '여러분의, 대한의 육군입니다! 모든 국민들은 빨리 대피하십시오!
본 건물안에 폭발물이 설치되어있다는 제보입니다!
' 포...폭발물?! 저, 저는 일단 여기서 대피하겠습니다! 카메라 빨리꺼!'
-쿠웅...쿵...쾅...치이이이이이이익-"



일본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성공시킨 이후 근대화를 이루며,

제국주의적 대외진출을 도모하였다.
4200년에는 쥬신제국과 수호조약을 체결하고 화친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두고 조·일 양국간의 분쟁은 계속 발생하였다.
쥬신은 4207년 쓰시마인(對馬人)이 일본인에 의해 살상된 것을 계기로,
대마도에 출병하여 일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쥬신의 세력권하에 두게 되었다.
그 후 4212년에는 종래 조·일 양국이 종주권을 주장해 오던 대마도를 병합하여
대마군(對馬郡)을 설치하였고, 일본의 용인을 받아냈다.

보다 큰 분쟁은 중화민국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세력 다툼이었다.
일본은 유신 직후 쥬신의 간섭을 배제한 채 중화와 수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4209년),

상하이·항저우·광저우를 개항시켰다.
한편, 쥬신은 일본의 중화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중화로 하여금 서양 각국과도 조약을 맺도록 조언하였다.
중화에서 4215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출병하여 적극적인 개입으로 중화에서 보다 확실한 주도권을 잡았고,
4217년에도 중화에서 일본의 지원을 받은 진보파가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키자,
쥬신 군사는 이를 3일만에 진압하였다.
두 사건에서 쥬신이 우세하고 일본이 약세를 보이자,
일본은 이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였다.
다음 해 조·일 양국은 톈진조약[天津條約]을 체결하여,
양국 군대의 철수를 약속하고 이후 중화에 출병할 때는 상호 통고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리하여 쥬신과 일본의 군대는 중화으로부터 철수하였으나,
쥬신은 원세정을 중화에 주한대사로 상주시키고 중화의 내치·외교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는 한편,
경제적으로도 쥬신의 진출이 크게 향상되는 등, 쥬신은 중화에서의 패권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일본도 경공업 등이 발달하여 중화 시장에 크게 진출하게 되어,

중화는 조·일의 경제대립의 장이 되었다.
그러던차 4227년 중화에서 농민반란(農民反亂)이 발생하였다.
위기에 처한 중화 정부는 쥬신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양력 6월에 쥬신이 파병하자 일본도 톈진조약에 근거하여
동시에 중화에 파병함으로써 세력 만회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반란이 진압된 이후에도 일본은 철병(撤兵)을 거부하고
오히려 중화에 대한 침략 야욕을 드러내어, 중화내 개혁(갑오개혁)을 강요하고,
동시에 중·조간에 맺은 통상무역장정(通商貿易章程)을 폐기하라고 요구하며

내정을 간섭하는 등 지배권 확보를 도모하였다.

일본은 개광(개봉-광주)간 전선(電線)을 가설하여 전쟁에 대비하는 듯 하더니,
6월 21일에는 병력을 동원하여 총리관저와 4대문을 장악하였다.
한편, 중화 정부는 일본의 강요로 쥬신과의 통상무역장정을 폐기한다고 발표함으로써,
조-중간의 국교를 단절시키고, 일본군은 중화 정부의 요청을 받은 것처럼 위장하여
항주만에 주둔중인 쥬신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항주만 앞바다에서는 쥬신의 육군을 싣고 오는 쥬신의 함정을

일본군이 습격하여 참패시키고 말았다. 여기서 쥬신의 군사 1,200여명이 익사하였다.
이미 조·일 두 나라 군대가 조선내에서 충돌한 것이다(4227. 7. 25, 새벽).
이어서 소주(蘇州)에서도 두 나라 군대가 충돌하여 일본군이 압승하였다.
이 마당에 양국은 선전포고(宣戰布告)를 하고 이제야 전면전으로 돌입하게 되었다(8. 1).

그 후 회남 전투에서 역전이 시작되어 쥬신이 승리하였으며

양자강 중류에서 벌어진 도하전에서도 일본군이 패주하였으며,
쥬신은 호북성 무한을 일본군으로부터 탈환하였다.
쥬신 해군은 우세한 전력으로 연승하며 일본본토에 상륙하였다.
규슈의 구마모토까지 점령한 후,
최후로 시코쿠 연합함대를 격파하여, 결국 서일본함대(西日本艦隊)는 전멸하고 말았다.
일본 세이니혼제독(西日本提督) 마치미즈 히로고(丁水日五)는 항복문서와 함께

모든 군사물자를 쥬신에 양도하고 자결하였다.
쥬신군은 이세반도·이세만·하마마쓰를 장악하고, 도쿄·시즈오카를 위협하였다.
북쪽에서는 센다이를 점령하고, 끝내는 열도 전체를 정복할 기세였다.

이럴 즈음 영국과 러시아 등이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쥬신은 이들을 모두 거절하고,
국제적으로 중립적으로 보이는 미국의 중재를 받아들여,
결국 쥬신과 일본은 4228년 4월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당시는 馬關)을 체결하여

전쟁의 뒤처리를 하였다.
쥬신은 승전 댓가로 거액(일본 1년 예산의 2.5배)의 배상금과
일본의 영토인 시모키타반도[下北半島], 훗카이도[北海島], 사도섬을 할양받았다.
그러나 극동으로의 진출을 꾀하는 러시아는

쥬신이 후쥬신 북부의 영토를 장악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러시아·프랑스·독일 3국이 이에 간섭하여(삼국간섭) 후쥬신 북부를 러시아에 반환토록 압박하였다.
힘의 열세를 느낀 쥬신은 후쥬신 북부를 반환하였고,

러시아에 대한 불만은 심화되어 새로운 어두운 역사를 잉태하고 있었다.

전쟁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쥬신은 벼락치기로 전쟁준비를 해서

준비가 덜 되어있던 일본을 상대로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조일전쟁의 승리로, 그 동안의 동양 패권을 쥬신이 더욱 확고히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 몽골 등 대륙으로의 진출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쥬신은 국내의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며 자본주의 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편, 패전한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더욱 받게 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4341년(서기 2008년) 작성된 한경대학교 한 학생의 출제물



9095년(서기 1897년), 쥬신내에서 국명에 대한 이의제기가 시작되었다.

국명변경론자의 의견은 '쥬신과 후쥬신이란 용어는 어디서 유래되었나'이다.
후쥬신인들은 고서인 '환단고기'가 그 유래라며 국명변경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정밀조사끝에 환단고기가 위서로 판정나자,
정부에서는 위서에서 따온 이름은 쓸수없다하여 새로이 국명을 정하기로했다.
주로 "대한제국", "조선제국", 혹은"대한조선제국"으로 하자는 의견까지 나왔으나
"대한제국"쪽으로 가닥이 잡혀갔다.
환단고기에서 유래된 "한기(桓紀)" 또한 바꾸기로 하고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도 건국연대가 오래되었다는것을 알리기위해
일연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기원전 2333년설을 이용해 단기를 제정했다.
(예는 서기 1897+기원전 2333을 더해서 단기를 구한다. 이때는 단기 4230년이다.)


1897년, 정부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변경(통칭은 한국)하고
화폐단위개혁을 통해 100환을 1원(圓)으로 변경한다.

2008년 8월 15일 금요일

환단고기가 진리이고 정석인줄만 아는사람들은 봅니다.

[환단고기]는 1979년에 이유립이란 사람이 60년대부터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발표한책입니다. (스승이라고하는 계연수는 실존했는지도 의심스러움)

[단기고사]는... 정말 2~30년전에 쓰여졌다고밖에 볼수없는 내용들로 가득차있음...


초록불님의 블로그 내용을 인용합니다.


9세 아술에 이르면 을성문덕이 국민의 참정권을 주장하고 의회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筆:기원전에 저런일을?!)
10세 노을은 최고 자문처로 자문기관을 설치합니다.
11세 도해는 만국박람회를 개최합니다. 기계공창을 설치하여 온갖 기계를 만
듭니다. 양수기, 경기구, 천문경, 자명종, 어풍승천기, 흡기잠수선 등등.

(筆:ㅅㅂ 이거뭐야, 얘네들은 신이야?!)
12세 아한 때는 후세의 역사를 예언하는데 노스트라다무스는 비교가 되지 않
습니다. 또 단기고사의 거의 모든 왕들은 태자가 왕위를 물려받는데 이때 아
우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3세 흘달 때는 근대 천문학 강의가 있습니다.
14세 고불 때는 인구조사가 있었는데 인구가 1억8천만명이라고 나옵니다.
16세 위나 때는 전거가 분명한 奇遇를 우리 역사에 엉뚱하게 붙여 놓고 있습
니다(이런 대목은 여기 말고도 몇군데 더 있습니다).
17세 여을은 민권옹호정치를 펴고 국립장관학교를 만듭니다.

후단군조선으로 들어가서
2세 추로의 신하이름이 왕이라는 뜻의 이사금입니다.
7세 등올은 입법, 사법, 행정을 분리한 삼권분립을 시행합니다.
9세 감물 때에는 유황발사총이 발명됩니다.

그리고 기자조선에 들어가면 철학, 윤리학 등의 책이 지어지고(이것은
전 부분에 걸쳐 다 나오는 바인데 자본론이니 심리학이니, 논리학, 도
덕경 등도 다 우리가 지은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10세 등나때에 성선설, 성악설, 무성설 등이 주장됩니다.
20세 때에는 사상의학이 나오는데 우리 선조들의 고귀한 업적이 모두
고조선 시대에 올라가 붙어있는 격입니다.


누가 기원전 저시대로 타임머신 타고가서도 이룩할수없는 위대한 업적들!

정말 판타지라는...


디시의 역갤에서 초록불님이 환빠논파방법을 주루룩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정독하면 당신은 언제 환빠와 만나게 되더라도 환빠쳐부수기 100%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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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빠들은 이글을 정독하고 환상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저도 한때는 환빠였으나 이글보고 정신차렸다는.

(나한테 욕쳐하면 사이버수사대에다가 신고한다)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재야사학자들은 이유립의 말장난에 넘어가서 수십년동안 헛고생만 하고있습니다.

당장 환단고기와 이유립이 저술한 모든책들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인터넷에서 모든내용을 삭제해야지만이 역사왜곡을 막을수있습니다.